[오토바이는 거들 뿐] 바이크는 멋진 악기... 서울 떠나 고성에 스며든 제작자의 느린 변주곡

관리자 입력 2026.04.16 16:00 조회수 17 0 프린트

복잡하고 치열한 서울 이태원을 떠나 강원도 고성의 산 밑으로 스며든 사람이 있다. 그는 빛을 조각하는 조명 공방 ‘마이너레이저’의 박종복 대표다. 남들은 더 많이 더 빨리 벌기 위해 속도를 높일 때 그는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맞추며 하루하루 꾸준히 일하는 담백한 ‘정신 승리’를 택했다. 

오토바이를 스릴과 과속의 도구가 아닌 기분 좋은 엔진음으로 위안을 주는 ‘멋진 악기’라 부르는 사람. 고성의 짙은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템포로 인생을 연주하고 있는 그의 낭만적인 유목 라이프를 소개한다.
 
-편집자 주-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고성에 사는 박종복입니다.

서울 이태원에서 강원도 고성으로 이주했잖아요. 많은 곳 중 왜 하필 고성이었나요?
이방인을 자처하는 유목민 같은 기질이 있어요. 게다가 고객을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지역을 선택할 때 더 자유로웠죠. 고성에서 월세, 전세로 몇 해 살아 보니 이곳에 정착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처음에는 바닷가 근처를 둘러봤는데, 자금에 맞추다 보니 점점 산 밑으로 오게 되더라고요(웃음).
 

서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뻔한 답처럼 들리겠지만 자연이죠. 아름다움을 넘어 우주의 기운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바다 냄새를 맡거나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를 들을 때면 뭔가를 초월하는 듯해요. 이런 기분을 일상처럼 느낄 수 있죠.

고성에서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마이너레이저>에서 조명을 주문 제작하고 있어요. 레이저 커팅, CNC, 3D프린트를 응용해서요. 상담, 제작, 배송까지 제가 직접 합니다.

어떻게 지금의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됐나요?
저도 원래는 직장인이었어요(웃음). 자동차 브레이크에 들어가는 캘리퍼를 제조하는 곳이었는데, 협력업체 중 한 곳이 지금의 <마이너레이저>같은 곳이었어요. 그때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불합리한 일로 홧김에 퇴사하면서 자영업의 길에 들어서게 됐죠(웃음).
 
 
<마이너레이저>라는 이름에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라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어요. 저도 레이저를 다루는 일을 하는데, 살짝 꼬아서 이름 지으면 재밌겠더라고요. 그리고 을지로 제작 업체들에서 겪은 불친절함, 번거로움, 불합리함을 빼겠다는 의미도 있고요. 예를 들어 어떤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구현 가능한지 물어보면, 이유도 없이 무조건 '안된다. 안한다'라는 경우가 태반이었거든요. 

이름의 기원처럼 음악이 조명 제작에 영향을 미칠 것 같네요.
영감이라기보다는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아요. 시도 때도 없이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지만, 항상 에너지를 분출할 수 없거든요. 그러다 가끔 음악을 통해 에너지가 솟구치면 야근을 자처하며 개인작업을 하는 거죠.

음악도 재즈, 클래식, 일렉트로닉 등 장르는 다양하잖아요. 하지만 다른 장르 안에서도 바이브가 비슷한 곡들이 있어요. 명확히 구분하기보다는 살짝 비틀어서 시도하는 걸 좋아해요. 저는 테크노도 명상 음악으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고성에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 것 같나요?
자영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간의 지배자가 된 것 같아서 정말 좋았어요.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가, 돈에서 벗어나고 싶어 졌고요. 많이 벌기보다 불만감 없이 이렇게 살아가면 좋겠어요.

사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잘 벌 수 있을까?'에 포커스가 있었는데, 돈에 쫓기게 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제가 원하는 것과 멀어지더라고요. 균형을 잡고 싶은 거예요.

제가 예상한 자영업자의 대답과는 많이 달라서 놀랍네요.
방금 제가 균형을 잡고 싶다고 했잖아요. 수입과 지출의 균형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스트레스받지 않고 적당한 양의 일을 꾸준히 하고 싶은 거죠.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것처럼요.

그래서 사업 초기에는 수익 흐름을 만드는 데에 집중했어요. 자신만의 콘셉트나 철학에 너무 집중하면 이걸 간과할 수 있거든요. 실제로 이런 분들이 많고요.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저만의 시스템을 계속 유지 보수했던 거죠.

여기에 필요한 게 정신 승리라는 개념인데요(웃음). 업계에서 저를 봤을 때는, 사업이 실패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거든요. 다른 이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만족할 수 있어야 해요. 물론 막연한 걱정은 항상 하죠. 자영업자의 고질병이니까요(웃음).

가까운 계획이나 목표가 있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이 공간을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요. 돈은 생각하지 않고 순전히 재미만을 위해서요. 결국에는 사람이니까요. 모든 걸 내어줄 수는 없겠지만, 제가 나눌 수 있는 정도에서는 해보고 싶어요.

현재 어떤 오토바이를 타고 있나요?
혼다의 CB1100EX를 타고 있어요. 지금까지 많은 오토바이를 타오면서, '이제는 오래 함께 할 기종을 타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데려왔죠. 특징이 없다는 게 단점일 수도 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질리지 않기 때문에 저에게는 장점이에요. 

오토바이를 타면서 갖게 된 추억이나 에피소드도 궁금하네요.
정말 많은데 그중에서 아직도 한 번씩 기억나는 장면은 강화도 다리를 건너던 순간이에요. 석양을 마주하며 달린 순간은 아직도 생생해요.

본인에게 오토바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멋지게 생긴 악기라고 생각해요. 엔진음이나 머플러 소리가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관상용으로 보기만 해도 만족감이 커요. 제가 공대생이라 그런가 봐요(웃음). 오토바이를 탄다는 건 멋진 악기를 하나 다룰 수 있는 거죠.

오토바이 타는 라이더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주세요.
항상 안전이죠. 자동차랑 동일하다는 인식으로 타면 좋겠어요. 사실 오토바이를 그만 타려고 했어요. 실제로 처분하기도 했었고요. 알고 지내던 분이 집 근처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당시에는 충격이 너무 커서 더 이상 못 타겠더라고요. 

다들 왜 그렇게 빨리만 달리려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직장에서 도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안전이 더 우선이잖아요.


 
맨위로